돈 없이 무슨 수선을 해?/곤허의 역사/황우대성의 기억
제787~793장에 열리는 세 기억과, 그것이 드러내는 곤허의 성립 과정을 다룬다.
곤허의 기억 3부작 — 1편 신세계 계획 → 2편 황우대성의 기억 → 3편 기억몽경
개요
만법종 종무원 시기의 장우가 대성전인 계열 연법도를 통해 받은 황우대성(荒牛大聖)의 세 기억. 감각을 동반한 의념 속에서 장우는 황우의 몸으로 곤허 건설기의 사건을 겪는다. 세 기억은 시대순으로 이어진다. 기억을 얻는 과정과 종문에서의 행적은 구일분장과 명산부에서 다룬다.
황우대성의 의념을 통해 전해지는 역사다. 기억 바깥에서도 참선은 곤허의 36층이 한 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건물을 짓듯 한 층씩 나뉘었다는 전언을 소개한다.
참선은 의념의 침투를 탈사보다 시험에 가깝다고 해석한다. 장우도 기억에서 깨어난 뒤 선인에게 저항할 용기와 동료에게 힘을 나눠 줄 의지를 시험받았다고 돌아본다.
첫 번째 기억: 내가 곧 황우이니 (787장~788장)
진파급 선문 공법 《혈조정기성관(血潮精氣聖觀)》에서 추출된 선도 기술을 열람하던 장우는, 영계 깊은 곳에서 들려온 부름과 함께 뇌리로 밀려든 의념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기억 속의 세계는 지금의 곤허와 다르다. 세계는 아직 36층으로 나뉘지 않았고, 해와 달이 대지를 비추며 별빛도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수백 개의 종문이 숲처럼 들어선 세상에서 사람과 요괴와 수사와 선인이 같은 하늘과 같은 시공간을 공유한다. 그러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이 세계는 대개조를 맞는다. 수백 개 종문과 무수한 수사들이 선인들의 인솔 아래 세계를 분할하기 시작하고, 대지가 찢겨 나가고 하늘이 베어지며 해와 달과 별이 하나씩 거두어진다. 하늘과 땅을 꿰뚫는 검은 선, 곧 천주가 세워진다. 계획대로라면 세계는 구름 위의 천계(天界)와 아래의 인계(人界)로 나뉠 예정이다.
공사를 실제로 수행하는 것은 하늘과 땅을 뒤덮으며 나타난 요예들이다. 선인들이 세상을 개조하기 위해 첫 번째 요성(第一妖聖)에게 명하여 제조한 건설 군단이며, 그중 가장 널리 분포하고 수도 많은 종족이 황우(荒牛)다. 황우들은 동심이체(同心異體)여서 천하 방방곡곡의 억만 개 육체가 하나의 의념으로 귀결된다. 이 대목에서 기억의 주어는 '그들'에서 '우리'로 바뀐다.
"내가 곧 황우요, 황우가 곧 나다."
억만 마리의 뇌리에서 고동치는 것은 오직 일뿐이다. 본래 무정무의(無情無義)하고 마음도 감각도 없도록 설계된 집단 생명체인데, 언제부터인가 그 가슴속에서 분노가 끓기 시작한다.
분노의 출처는 한 소녀에게서 시작된다. 황우들을 보조하러 온 종문의 연기(煉氣) 제자인 그녀는 성읍 이주 작업을 함께 진행하며 범인들의 의문과 걱정을 온화하게 풀어 준다. 작업이 끝나자 그녀는 양계가 분할되어 선(仙)과 범(凡)이 나뉘면 범인들도 종문 전쟁에 휘말릴 걱정 없이 평온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황우가 들은 말을 묵묵히 기록해 둔다는 것을 알기에 당부 하나를 남긴다.
"범인(凡人)은 선도(仙道)를 지탱하는 옥토(沃土)라고 했어. 흙과 진흙이 비옥해져야만 선도(仙道)가 비로소 창성할 수 있는 거야."
그러던 어느 날 소녀는 종문에서 온 사람에게 통보를 받는다. 시험을 못 보면 문파에서 쫓겨나며 자신도 그 대상이라는 것, 어머니와 소작인들이 이미 정리되었고 아버지는 가장 먼저 숙청된 잡역 제자들 중에 있다는 것. 소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로 아무런 재능이 없다면, 마땅히 자리를 내어주어야죠. 더 재능 있는 사람이 선도(仙道)에 오르도록 해야 그들이 진정으로 세계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소녀는 마지막으로 황우의 머리에 손을 얹고, 남은 청사진을 마저 완성해 범인들이 안거낙업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뒤 집으로 돌아간다. 얼마 뒤 황우는 식량을 씹다가 그 속에서 익숙한 맛을 느낀다. 소녀의 맛이다. 익숙한 의념이 체내로 쏟아져 들어와 집단 의식으로 전해지고, 황우들은 소녀의 발버둥과 죽음과 그녀가 식량으로 가공되는 과정을 함께 본다.
소녀 한 사람의 일이 아니다. 황우와 협력했던 연기 수사들의 의념이 잇달아 흘러들면서 세상의 전모가 드러난다. 종문이 마련한 거주지로 이주한 범인들은 검사를 받고 선도 자질이 없는 자가 모두 도륙되었으며, 수년간 연기 경계를 돌파하지 못한 수사도 일정 나이에 자질 없음이 확정된 아이도 같은 처분을 받았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산 라인 위에 놓인 것처럼 선도의 길로 보내지고, 수선 자격이 없다고 확인되면 즉시 회수되어 헐값의 원자재가 된다. 대량의 범인 혈육에 약간의 연기 수사 고기를 섞어 다진 것 — 그것이 황우들의 식량이다.
망자들의 의념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잔잔하던 황우의 의식의 바다에 파란이 인다. 아직 윤회 시스템도, 영계와 연계된 혼수(魂修) 체계도 없었기에 원혼들이 의식 네트워크로 직접 흘러든 것인가 — 황우와 장우의 시점이 겹친 기억 속에 그런 짐작이 떠오르지만, 다음 순간 의식의 바다는 분노와 슬픔과 원통함에 장악된다.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자 억만 마리가 일제히 작업을 멈추고 산과 바다를 건너 천주를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어떤 저지도 경고도 그들을 멈추지 못한다. 그들이 묻고 싶은 것은 망자들이 남긴 마지막 물음 하나뿐이다. 어째서 우리를 죽여야만 했는가, 범인은 선도를 지탱하는 옥토라 하지 않았는가.
세상을 뒤흔드는 위압이 황우들을 땅에 무릎 꿇리고, 하늘 밖에서 목소리가 내려온다. 대답은 구호를 철회하지 않는다. 범인은 확실히 선도를 지탱하는 흙이지만 척박한 흙에서는 꽃이 피지 않으니 거름을 주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대를 이어 물을 주고 대를 이어 우열을 가려 도태시켜야 흙이 비옥해진다는 것이다.
"이 천하의 모든 쓸모없는 폐물, 모든 약자들이야말로 가장 좋은 비료다."
말하는 사이 거대한 발이 창공을 찢고 내려와 황우들의 등을 짓밟는다. 황우들의 몸에서 기혈이 끓어오르고 힘이 폭발해 그 발을 들어 엎으려 하자, 목소리의 주인은 도리어 반긴다. 짓밟히는 이 순간과 이 분노의 감각을 똑똑히 기억하라고, 그것이야말로 너희의 유일한 존재 의의라고 말한다.
"너희들의 반항하는 마음을 그냥 쳐부수어 자원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이용하는 편이 낫겠다고."
그 순간 황우들은 자신이 거대한 용광로가 되어 체내에 주입된 의념을 제련하는 감각을 받는다. 망혼들의 분노와 원한이 지극히 정순한 힘으로 바뀌어 몸속으로 들어오고, 실력이 크게 오르며 오랫동안 먹을 필요도 없어지고 의식 네트워크마저 확장된다. 이것이 대량의 망혼을 수용하고 태워 존재를 유지하는 영혼연계(靈魂淵界)이며, 기억을 체험하는 의식 속에 이것이 신력 네트워크와 영계(靈界)의 전신일지도 모른다는 추정이 떠오른다. 분노로 터질 듯하던 신체가 정상으로 돌아오자 황우들은 하나둘 저항을 포기한다. 꺼지지 않는 원념은 남지만, 그것은 종문의 임무를 더 빨리 완수하게 만들 뿐이다.
살아서는 고된 일밖에 할 수 없는 폐물이었고, 죽어서는 피와 살이 싸구려 자원이 되며, 최후의 분노까지 소멸하는 순간까지 이용당한다면 선도의 태평성대가 대체 자신들과 무슨 상관인가. 그 원통함과 함께 한 줄기 심법 구결이 황우의 마음 깊은 곳에서 떠오른다.
"……아홉 번 죽어도 굴하지 않고, 이 몸 바침에 후회 없으니, 비로소 원신(元神)이 육체의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이것은 장우가 1층 고등학생 시절부터 수련해 온 제1심법 《잔우사신심결(殘牛舍身心訣)》의 구결이다. 처음부터 그를 지탱해 온 심법의 출처가 아득한 창세의 시대에 짓밟힌 황우의 원통함이라는 사실이 여기서 처음 밝혀진다. 한 마리 황우가 포효하며 등 위의 거대한 발을 들어올리려 한 순간, "나는…… 장우(張羽)다!"라는 자각과 함께 장우는 기억에서 깨어난다.
두 번째 기억: 인류는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 (789장)
며칠 뒤 장우는 다시 영계 깊은 곳의 부름과 함께 두 번째 의념을 수신한다. 기억은 지난번이 끝난 자리, 선인의 발밑에 짓밟히던 순간에서 다시 시작된다. 선인은 스스로를 짐승 찌꺼기라 말하라고, 태어날 때부터 짓밟혀야 하는 존재라고 인정하라고 요구한다. 황우의 분노는 화산처럼 끓지만 타오를수록 자신을 옥죄는 힘으로 바뀐다.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요예의 의식 밑바닥에 태어날 때부터 새겨진 철칙이며, 그들의 공통된 어머니인 제1요성(第一妖聖)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선인들에게 창조되어 영원히 반항하지 않고 고통을 느끼지 않으며 오직 일편단심으로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이 선조요(仙造妖)는 황우들뿐 아니라 다른 모든 요예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요예에게 인류 봉사는 제1의 의무이고, 그 인류 중에서도 선인이 최우선이다. 저항할수록 마음속 원혼들의 분노가 가중되어 속박이 강해질 뿐이므로, 황우는 다시 작업 위치로 내몰린다.
이어지는 나날 동안 세계 개조는 계속 추진된다. 선인들이 요구하는 신산과 선지, 하늘을 나는 궁전을 짓기 위해 황우의 몸에는 점점 더 많은 선도 기술이 적용되어, 육체는 천변만화하고 피 한 방울로 부활하며 분신이 무한히 분화하는 존재가 되어 간다. 영혼연계의 범위도 넓어져, 그것이 덮인 곳에서 수선하지 않은 범인이 죽으면 혼백이 곧장 황우의 의식 네트워크로 흡수된다. 원혼들의 기억과 과거와 집념은 연소 속에 흩어지고 최후에는 순수한 분노만 남는다.
이 분노와 함께 세상 끝날 때까지 타오르리라 여기던 무렵, 아직 완공되지 않은 천계에 균열이 생긴다. 알 수 없는 힘에 천궁(天穹)이 들이받혀 열리고, 모든 요예의 머릿속에 제1요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가 천공을 깨뜨렸는지, 누가 제1요성으로 하여금 이 목소리를 전하게 했는지 기억은 끝내 답하지 않는다. 다만 목소리의 문면이 과거와 미묘하게 다르다.
| 시점 | 요예들에게 전해진 말 |
|---|---|
태어날 때부터의 철칙 | 인류는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란다. 반항하지 말고, 고통스러워하지 말고, 전심전력으로 인류를 위해 봉사하렴. |
천공이 깨진 날 | 인류는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란다. 전심전력으로 인류를 위해 봉사하고,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우렴. |
속박이 느슨해진 순간 황우들은 오래 억눌린 포효를 터뜨린다. 영혼연계를 타고 흘러든 혼백들이 복수하고 싶다고, 지키고 싶다고, 억울하다고 외치는 가운데 황우에게도 처음으로 자기만의 생각이 싹튼다. 그것은 소녀가 남긴 당부와 같은 문장 — 범인들도 편안히 살며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다음 순간 온 천하의 억만 황우가 움직인다. 도살장 위로 황우들이 쏟아져 내리고, 범인들을 도륙하던 수사는 무수한 범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산 채로 짓이겨진다. 이날부터 황우대성(荒牛大聖)의 전설이 퍼져 나간다. 죽은 조상이 황우로 환생해 지켜 준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요괴들이 선인에게 반기를 들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으며, 절망에 빠진 채 죽으면 황우대성이 마음속 가장 깊은 염원을 이루어 준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리하여 범인들 사이에서 자살하는 사람의 수가 늘기 시작한다. 소문은 곧 종문의 탄압을 받아 금지되지만, 범인들은 계속되던 도륙이 멈췄다는 것을 깨닫는다.
종문과의 전쟁 속에서 황우대성의 전투력은 비약적으로 오른다. 짓이겨 죽인 수사들의 혼백이 영혼연계로 빨려 들어와 그의 일부가 되면서 각 문파의 무공과 도술을 익히게 되고, 수사들의 생각과 종문의 생각까지 이해하게 된다. 그 이해의 끝에서 그는 고개를 들어 천계를 바라본다. 모든 분노와 원통함의 근원이 선인들이라는 결론이다. 등 뒤에는 요예와 인류가 뒤섞인 동료들이 신뢰의 미소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천계가 아직 혼란스러운 덕에 이만큼 오래 날뛸 수 있었다는 말이 오가는 사이, 하늘의 구름이 뒤집히며 선운을 두른 인영들이 강림한다. 짐승 찌꺼기야 오랜만이라는 인사에 황우대성은 오늘은 네가 먼지 구덩이에 처박힐 차례라고 답한다.
억만 황우가 검은 홍수가 되어 하늘을 덮치지만 선인의 공세 앞에서 그는 여전히 열세이고, 상대가 선기(仙器)를 꺼내자 더 거세게 몰린다. 육신이 하나하나 무너져 흩어질 때 거룡 한 마리가 돌진해 와 자신을 먹으라고 외친다. 거룡이 사라지자 황우대성의 육신이 다시 팽창하고 손을 쓸 때마다 용족의 신통이 뿜어져 나온다. 나도 먹으라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인간이든 요괴든 동료들이 하나둘 삼켜짐에 따라 그의 힘은 겁운(劫雲)을 순식간에 박살 내고 경지마저 돌파하는 수준으로 치솟는다. 또 한 번의 굉음 속에서 선인은 손끝에 맺힌 피 한 방울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되묻는다.
"그래서 결국, 네놈도 놈들을 싹 다 잡아먹은 꼴 아닌가? 예전이랑 다를 게 뭐지?"
황우대성의 대답은 한 줄이다.
"다르다. 그들은……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
선인이 비웃음을 흘리며 인계 전체를 가루로 만들 듯한 발바닥을 내리누른다. 인류는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라고 나직이 읊조리던 황우대성의 얼굴에 망설임이 스치고, 중대한 선택을 앞둔 그의 의식에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기이한 생각이 스친다. 다음 순간 그는 나와서 너희가 하고자 했던 일을 하라고 포효한다. 무수한 얼굴이 모든 황우의 몸에서 솟아 나와 형상을 갖추고 쏘아져 나간다. 과거에 삼켜진 범인들, 방금까지 함께 싸우던 동료들, 한때 삼켜진 수사들. 그리고 언젠가 작별을 고했던 소녀가 그의 곁에 서서 하늘을 바라본다.
"황우야, 우리 함께…… 이 세계를 완전히 다시 만드는 거야."
기억은 여기서 끊긴다. 하늘을 뒤덮은 발바닥 아래에서 그 싸움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세 번째 기억: 오직 도통만이 도통을 이길 수 있다 (793장)
세 번째 의념은 앞의 두 차례와 달리 부름 없이 스스로 실험실에 강림하고, 그 파장이 장우의 식해까지 휩쓴다.
기억은 끝을 보지 못했던 그 전장에서 다시 시작된다. 무수한 형체가 하늘로 솟구쳐 선인을 습격하고, 떨어진 시체들은 황우대성에게 삼켜진 뒤 다시 부활해 전장으로 뛰어든다. 죽음을 맞이할 때마다 대성 측은 강해지고, 선인의 힘과 전술에 적응하며 빈틈을 찾아낸다. 꼬박 열흘 밤낮의 격전 끝에 선인의 육신이 산산조각 나고, 황우대성은 그것을 한입에 삼킨다. 승리를 선언하는 포효에 선인의 시체에서는 가벼운 비웃음만 돌아온다.
"너희는…… 이길 수 없어, 아무도 이길 수 없다."
그것을 끝으로 선인의 의식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고, 전장은 환호로 뒤덮인다. 천계에 더 강한 선인들이 있음을 알기에 모두가 몸을 숨긴 채 다음 대전에 대비하지만, 두 번째 선인은 끝내 강림하지 않는다. 천계 쪽이 아직 혼란스러운 것인지 이유는 기억 안에서도 밝혀지지 않는다.
전투 중 삼켜졌다 부활한 이들 가운데 다수는 다시 황우대성의 체내로 돌아가고, 독립된 개체로 살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그는 선택을 허락한다. 이후 그는 동료들을 이끌고 범계(凡界) 전체를 휩쓴다. 무수한 범인이 구원받고 수사들은 삼켜지거나 합류하며, 인계의 질서가 재정립되어 범인이 더 이상 재료처럼 처분되지 않게 된다.
곧 새로운 문제가 나타난다. 종문은 애초에 이만큼 많은 범인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기에 각종 시설의 파손이 심각하고, 수사들에게도 더 많은 자량(資糧)이 필요하다. 자량은 언제나 부족하기 마련이니 결국 서로 싸우다 범인들을 포기하게 될까 두렵다는 소녀의 걱정에 황우대성이 답한다.
"이제부터, 내가 천하를 먹여 살리겠다. 천하의 모든 사람을, 나 혼자서 부양하리라."
선인의 경지에 오르고 선시(仙屍)마저 삼킨 그의 생산력은 이미 세상 모든 이를 뛰어넘는다. 수억 마리의 황우가 대지를 뒤덮어 황폐한 땅을 정비하고 엉클어진 영맥을 제자리로 돌리며 온갖 물자를 생산한다. 세상은 또 한 번 황우에 의한 개벽을 맞이하되, 이번에는 선인이 아니라 천하 창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다. 요예들도 동참해 오직 인류에게 봉사하기 위한 종문 '천요종(天妖宗)'이 설립된다. 범인은 식량 부족을 걱정하지 않게 되고 수사들도 막대한 선도 물자를 공급받아, 다툴 필요도 약탈할 필요도 없는 태평성대가 온 듯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질서에 익숙해질 무렵, 황우대성의 집단 의식 네트워크에 잡음이 섞이기 시작한다. 언제까지 일해야 하는지, 어째서 계속 저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지 묻는 목소리다. 그는 이탈을 원하는 이들의 청을 받아들이고, 권유를 받아 자발적으로 합류하는 이들도 받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합류자는 줄고 네트워크 내부는 침묵에 잠기지만, 그는 묵묵히 수억만 마리를 조종하며 계속 천하를 먹여 살린다.
극단적인 물질의 풍요는 인구의 폭발을 부르고, 물자에 대한 욕구는 그만큼 커진다. 누구나 선도의 정점과 영생을 갈망하게 되면서 자량 쟁탈전이 곳곳에서 터져 대전쟁으로 번진다. 범인들은 다시 황우대성의 비호를 찾고, 약탈하던 수사들은 진압된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황우대성의 비호를 얻는 자만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더 많은 인원과 더 거대한 함성만이 그의 가장 적극적인 응답을 이끌어낸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후 강력한 수사들은 범인을 긁어모아 도시와 나라를 세우고 국민을 결집시켜 한목소리로 울부짖게 만든다. 더 큰 나라의 외침일수록 응답을 얻기에 유리하니 거대 세력이 군소 세력을 집어삼키고, 인계에는 머지않아 가장 거대한 두 제국만이 남는다. 두 나라의 기나긴 전쟁과 양측의 빗발치는 요청 속에서 황우대성의 의식 네트워크도 분열해 두 갈래의 힘으로 나뉘어 각각의 국가를 돕게 된다. 그가 구축한 두 나라 사이의 긴 전선은 겹겹의 공간 장벽으로 변모하고, 마침내 인계를 상하 두 개의 세계로 갈라놓는다. 열세에 몰린 쪽이 하계, 우세를 점한 쪽이 상계가 된다.
바로 그때 그의 마음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울린다. 짐승 찌꺼기야 발버둥 쳐봐야 소용없다고,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결국 놈들에게 유리한 모습으로 변할 뿐이며 아무도 놈들을 이길 수 없다는 조롱이다. 황우대성은 천지를 샅샅이 훑지만 기척을 찾지 못하고, 선인들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직접 확인하려 천궁을 가로질러 천계로 돌진한다. 그리고 천계에 당도한 그는 멈칫한다. 천계의 상공에 또 하나의 하늘이 있다. 기억을 보던 장우의 마음에도 이 광경 앞에서 전율이 스친다. 곤허가 이렇게 한 층 한 층 쌓아 올려진 것인가.
이어지는 것은 황우대성 자신의 자술이다. 인간 세상의 강대국이 약소국을 짓밟아 달라 청했을 때 그는 자신이 어느새 당초의 그 선인과 똑같은 존재가 되어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나는 인계(人界)의 상계를 도와 인계의 하계를 탄압하고 있었다. 반면 나의 또 다른 일부분은 마치 예전의 나처럼, 인계의 하계를 도와 상계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 뒤로는 끊임없는 분열뿐이다. 하계는 더 많은 하계로 쪼개지고 상계는 더 많은 상계로 갈라지며, 한 층 또 한 층의 세계가 창조되는 동안 그 자신도 사람들의 부름에 따라 조각조각 찢겨 나간다. 위아래 양방향으로 무한히 증식하는 세계의 형상과 함께, 그는 이 상황을 바꾸려 했던 시도들을 늘어놓는다. 전쟁을 막고, 서로 다른 층의 세계를 융합하고, 모든 이의 의식을 다시 연결하고, 직접 국가를 세워 규칙으로 투쟁을 제한하고, 절대적인 무력으로 통제하고, 선한 자에게 상을 악한 자에게 벌을 내리는 완벽한 규칙을 세우고, 한 층의 모든 선도의 힘을 박탈해 생산과 전투와 수호를 자신이 전부 짊어지기까지 했다. 그 모든 시도가 소용없었고, 국가와 세계는 끝내 투쟁과 분열을 거쳐 상하 두 계층으로 나뉘었다.
거듭된 실험 끝에 그가 도달한 결론은 이 세계 전체가 자발적으로 한 방향 — 선인들에게 유리한 방향 — 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아무리 힘을 쓰고 압박해도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대나무처럼, 무엇을 하든 결국 실패를 맞이한다.
"이것이야말로 선인들의 진정한 힘이다. 이것이 바로…… 도통(道統)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장우의 가슴에 한기가 치솟는다. 기억 내내 황우대성이 발휘한 전투력 — 죽지도 파괴되지도 않는 그 능력이 선인들의 진정한 힘 앞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고, 전투 그 자체가 가치를 잃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황우대성은 그것을 소리 없는 강함, 만물을 조용히 적시는 비와 같아 전투로는 해결할 수 없는 더 높은 차원의 강함이라 부른다. 자신의 육신과 정신과 법력은 거듭되는 분열 속에서 이미 이 세계의 일부가 되었고, 유일한 행운이라면 태어난 시대 덕분에 이 세계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는 소수의 관찰자가 되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이 순간 장우는 굳건한 두 눈빛이 수많은 시대를 뛰어넘어 자신을 응시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오직 도통만이 도통을 이길 수 있다. 내가 남긴 도통을 찾아라…… 그것이 어쩌면,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기억은 이 유언으로 끝난다. 황우대성 자신이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 그 물리적 최후가 어떠했는지는 세 기억 어디에도 서술되지 않는다. 남는 것은 자술과 유언뿐이다.
세 기억이 남긴 것
세 기억에서 드러난 곤허의 성립 과정은 다음과 같다.
| 골격 | 기억이 말하는 것 |
|---|---|
세워진 세계 | 지금의 곤허는 자연 상태가 아니다. 해와 달과 별이 하나씩 거두어지고 천주(天柱)가 세워지며 하늘과 땅이 갈리는 시공(施工)이 있었고, 그 공사를 수행한 것이 선인들의 지시로 제1요성이 제조한 요예(妖裔) 건설 군단이다. |
도태와 회수 | 범인은 선도를 지탱하는 옥토라 불렸고, 자질이 없다고 판정된 자는 회수되어 원자재가 되었다. 황우들이 먹은 식량이 그것이다. 자질 심사와 도태는 세계를 짓는 공정의 일부였다. |
전용되는 저항 | 천주를 기어오른 봉기를 천계는 부수지 않고 동력으로 돌린다. 망혼의 분노를 태워 유지되는 영혼연계(靈魂淵界)가 이 자리에서 성립하며, 이를 신력 네트워크와 영계의 전신으로 보는 추정이 나온다. 장우의 제1심법 《잔우사신심결(殘牛舍身心訣)》의 구결도 짓밟힌 황우의 원통함 속에서 떠오른다. |
층으로 갈라지는 세계 | 인계는 양쪽 진영의 부름에 응한 황우대성 자신이 두 갈래로 나뉘면서 상하로 갈라졌고, 분열은 그 뒤로도 반복된다. 곤허의 층 구조는 그가 조각조각 찢겨 나간 자국이다. |
도통 | 무엇을 시도하든 세계가 저절로 선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되돌아오는 힘. 전투로는 상대할 수 없으며, 황우대성은 이것을 도통(道統)이라 부르고 도통을 찾으라는 유언을 남긴다. |
남겨진 과제 | 선인과의 전투에서는 승리했으나, 생산·통치 개혁은 반복되는 분열을 막지 못했다. 황우대성은 자신의 도통을 찾으라는 유언을 남긴다. 그 뒤의 최후는 세 기억에 나오지 않는다. |
해설
이하는 본문을 읽는 하나의 독법이다.
옥토와 비료
소녀는 범인을 선도의 옥토라고 부르며 그들을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 선인 역시 같은 표현을 쓰지만, 그가 말하는 옥토는 도태와 도륙으로 비옥하게 만들어야 할 흙이다.
소녀 자신도 재능 없는 사람은 자리를 내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가족의 죽음을 통보받고도 자신을 처분하는 기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황우가 그 기준에 의문을 품는 계기는 추상적인 논쟁이 아니라 여물 속에서 소녀의 맛을 알아본 순간이다.
같은 어휘와 같은 처분이 현재의 곤허에서 어떻게 반복되는지 — 대성 전인 제도, 종성 테스트, 고지능 기령 시대의 잉여 인간 처리 — 는 알레고리와 해석의 「창세기의 현재형」에서 다룬다.
분노를 동력으로 삼는 영혼연계
선인은 황우의 반항을 진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망혼의 분노를 노동 동력으로 바꾼다. 황우들은 강해지고 먹을 필요도 줄어들지만, 그 힘으로 수행하는 것은 여전히 종문의 공사다. 저항할수록 더 오래 일할 수 있게 된다는 역설이다.
영혼연계에서는 죽은 이의 기억과 집념이 타 없어지고 분노만 남는다. 이를 신력망·영계의 전신으로 보는 생각이 기억 중에 나타나지만, 직접적인 계보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황우가 반항하기 시작한 것은 먹이 속 망자들의 기억과 억울함을 자기 일처럼 받아들인 뒤였다. 기억 속에는 당시 윤회와 혼수 체계가 없었기에 원혼이 의식망으로 직접 흘러든 것 아니냐는 생각도 떠오른다. 이 대목을 뒤집어 읽으면, 현대의 윤회·영계는 죽은 자를 처리하는 동시에 그 원한이 산 자에게 전해질 길을 막는 장치로도 보인다. 죽은 뒤의 노동은 남고, 함께 분노할 계기는 사라지는 셈이다. 이는 두 시대의 기능을 대조한 해석이며, 황우의 각성을 막으려고 현대 윤회를 설계했다는 뜻은 아니다.
삼킨 자의 기준
황우대성도 동료들을 삼켜 힘을 얻는다. 그래서 선인은 자신의 식인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고, 황우는 그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고 답한다.
여기서 살아 있다는 말은 추모에 그치지 않는다. 삼켜진 이들은 몸 밖으로 나와 함께 싸우며, 전투가 끝난 뒤에는 집단 의식으로 돌아가거나 독립된 개체로 살기를 선택한다. 황우대성은 그 선택을 허락하고, 훗날 함께 일하기를 그만두려는 이들도 떠나보낸다.
기억몽경의 천마번에서는 잡아먹힌 사람들이 천마태자를 옹호한다. 두 장면 모두 먹힌 이의 의사를 묻지만, 황우의 기억은 인격과 행동의 보존, 이탈의 가능성까지 보여 준다. 동의나 감사의 말만으로 두 방식을 같다고 볼 수는 없다.
승리 이후의 분열과 도통
세 번째 기억은 선인과 싸우던 전장에서 이어진다. 황우와 동료들은 열흘의 격전 끝에 승리하고 범인의 도륙을 막는다. 봉기의 군사적 성과는 분명히 그려진다. 이후의 실패는 그가 다시 세운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는 데 있다.
황우는 천하를 먹여 살릴 만큼 생산력을 키우지만, 자량 쟁탈과 전쟁은 되풀이된다. 보호를 청하는 양쪽의 목소리에 응한 자신도 갈라져 한쪽에서는 상계의 탄압을, 다른 쪽에서는 하계의 저항을 돕는다. 층을 합치거나 규칙을 바꾸고 무력을 독점해도 다시 분열이 생긴다.
황우가 도통이라 부르는 것은 이런 시도들을 선인에게 유리한 질서로 되돌리는 힘이다. 선인 한 명을 쓰러뜨리는 일과 세계를 바꾸는 일이 다르다는 결론 끝에, 그는 자신의 도통을 찾으라는 과제를 장우에게 남긴다. 그 뒤 황우의 육신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요예의 기원과 '대성'이라는 이름
요괴의 기원에 관한 서사는 작중에 두 갈래로 존재한다. 하나는 대학 전쟁편에서 탄천진군이 적으로서 늘어놓은 주장이고, 다른 하나가 이 문서의 기억이다. 두 서사는 선조요(仙造妖)라는 한 지점에서 겹친다. 탄천진군은 반항하지도 고통을 느끼지도 않으며 오직 한마음으로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선조요를 선인들이 창조했고 그녀가 최초의 요성이라고 말했으며, 두 번째 기억의 제1요성 서술은 표기까지 같다.
탄천진군은 제1요성이 후대의 몸에 반항의 피를 숨겨 각성의 가능성을 남겼다고 주장한다. 기억에서는 천공이 깨진 날 제1요성의 명령이 바뀌고 황우의 속박이 풀린다. 전자는 반항할 자질의 기원, 후자는 실제 각성의 계기로 함께 성립할 수 있다. 다만 둘의 연결, 천공을 깨뜨린 자와 명령을 바꾼 자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참선은 대성을 과거 십대종문에 대항한 강대한 요예들을 높여 부르던 존칭으로 추정한다. 하늘의 질서에 반역하는 요괴와 ‘대성’이라는 호칭은 《서유기》의 제천대성을 떠올리게 한다. 황우대성에게는 그와 함께 세상을 짓고 먹여 살리는 노동하는 소의 형상이 겹친다. 다만 명칭의 직접적인 출전이나 작가가 밝힌 영향 관계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세 시대를 가로지르는 해석과 현재 곤허와의 대조는 알레고리와 해석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