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이 무슨 수선을 해?/곤허의 역사/기억몽경
곤허의 기억 3부작 — 1편 신세계 계획 → 2편 황우대성의 기억 → 3편 기억몽경
스포일러 주의. 799–825장의 주요 반전과 결말을 다룬다. 작중 전개 뒤에 정마대전의 연혁과 해설을 싣는다.
개요
구일분장 발령을 앞둔 장우가 오래된 시신에 남은 기억을 접하면서 시작되는 에피소드. 다섯 사람의 삶을 통해, 지금의 곤허가 성립하기 전 벌어진 정마대전의 전말이 드러난다.
작중 전개
능풍
구일분장으로 떠나기 전, 장우는 복선천이 14층에 남긴 유산을 회수하러 갔다. 그곳에는 두 눈과 손발이 없고 온몸이 훼손된 시신이 있었다. 도종 선인후예가 반응했고, 시신을 선인 공간에 거둔 장우는 낯선 꿈속으로 들어갔다.
꿈속의 능풍은 만법종의 촉망받는 대사형이었다. 스승을 대신해 도경을 강의하는 그의 곁에서, 영신천은 말없이 수업을 듣는 평범한 사제에 불과했다. 능풍은 연인 기몽운과 혼례를 약속하고 폐관에 들어갔다. 예정된 기간은 20년이었으나, 수련 중 문제가 생겨 다시 나왔을 때는 100년이 지나 있었다.
기몽운은 70년 동안 그를 기다리다가 30년 전에 종문을 떠났다. 능풍은 그녀를 찾아 5년을 헤맸다. 마침내 재회한 기몽운은 예전처럼 젊고 아름다웠지만, 이미 천마종에 몸을 담근 뒤였다. 능풍은 그녀가 납치당했다고 믿고 천마태자를 천 리나 추격했다. 천마태자는 기몽운을 앞세워 그의 손을 묶었고, 능풍은 두 사람의 협공에 붙잡혔다.
기몽운은 자신이 원해서 마도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남보다 의지와 노력이 부족하지 않은데도 자질 때문에 뒤처져야 했고, 돌아온 능풍에게 늙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이제는 다시 젊어졌고, 수련의 길도 열렸다. 그녀는 능풍에게 함께 천마종에 들어가자고 권했다.
능풍이 물은 것은 다른 일이었다.
“너…… 사람을 얼마나 잡아먹었지?”
기몽운에게 범인들은 베어도 다시 자라는 잡초였다. 능풍은 끝내 회유를 거절했다. 천마태자가 거듭 찾아와 그를 두들겨 팼으나 뜻은 바뀌지 않았다. 훗날 영신천이 감옥을 부수고 그를 구출하면서 꿈은 끝났다.
복희는 천마태자의 고문 솜씨를 비웃었다.
“저 천마태자란 놈은 마도라면서 고문 솜씨가 형편없네. 매번 두들겨 패주고 끝이야?”
그런데 당대 만법종의 천재는 영신천이었다. 그가 남긴 전언에 따르면 능풍은 자질이 둔하고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제자였다. 천마태자를 천 리나 추격한 줄 알았더니, 오히려 쫓기는 쪽이었다. 꿈속에서는 영신천이 평범한 사제가 되고 능풍이 천재 대사형이 되어 있었다.
영신천이 찾아냈을 때 능풍은 두 눈과 손발을 잃었고, 선근과 도기, 원신까지 뽑힌 상태였다.
참선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혹독한 고문을 상세히 묘사하지 않았다는 건 단 한 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그가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는 뜻이지.” “오히려 저 마도 놈들의 유혹이라든가, 마도의 살육과 악행, 그리고 저 기몽운이 잡아먹은 사람들…… 그것들은 똑똑히 기억하여 꿈속에 선명하게 반영해 낸 것이다.”
전언은 더 이어졌다. 기몽운은 능풍의 선근과 도기를 이식받아 수련이 일취월장했다. 영신천은 능풍을 구해낸 순간 기몽운과 천마태자를 반드시 베겠다고 결심했다. 두 사람을 죽이려던 싸움이 정마대전으로 번져, 끝없는 재앙을 남기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회고였다.
꿈에서 나온 장우는 공간에 남은 능풍의 진령과 마주했다. 능풍은 자신의 시신으로 동천의 흔적을 감추고 전승을 기다려 왔다. 힘을 넘기면 진령도 무너져 다시 윤회할 수 없게 되지만, 그 역시 자신이 원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장우에게 정과 마는 양립할 수 없다고 당부했다. 그렇다고 당장 선제를 베러 가라는 뜻은 아니었다.
“오직 쓸모 있는 몸을 보존하고 있어야만, 그래야… 천하가 진정 너를 필요로 할 때 나설 수 있는 법이다.”
힘을 보존하고, 때가 오면 상대의 신분과 인연을 가리지 말고 마를 베라는 말을 남긴 뒤 능풍의 진령은 무너졌다. 장우에게는 한 가지 물음이 남았다.
“나도…… 그것을 해낼 수 있을까?”[nang]
황이
구일분장에서 장우가 접한 다음 꿈의 주인은 황이였다. 열두 살에 마도의 혈제에서 정도 수사에게 구출된 그는, 자신도 수선자가 되기를 바랐다. 선문을 찾아다니고 가르침을 구했지만 사기를 당하기 일쑤였다. 스물다섯 살에는 노파를 구해준 인연으로 선병부에 들어갔다. 그곳에서도 그에게 허락된 자리는 잡역뿐이었다.
여섯 살, 열두 살, 열여덟 살. 세 번의 영근 측정이 끝나면 선도에 들 수 있는지도 결정됐다. 황이는 쉰 살이 되도록 일하고 수련했지만 내문에 들어가지 못했다. 함께 잡역원에서 수련하던 동년배는 이미 금단 도장이 되어 외문을 관리하고 있었다.
황이는 그 도장에게, 잡역원에서 사람을 때려 불구로 만든 소년이 무슨 자격으로 내문에 들어가느냐고 물었다. 도장은 답했다.
“그는 선영근이다.”
그 소년은 빈둥거리며 수련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따져도 대답은 같았다.
“그는 선영근이다.”
그렇다면 선영근이기만 하면 살인과 방화, 강간과 약탈을 저질러도 받아주느냐고 황이가 묻자, 도장은 그런 자일수록 문중에 거두어 엄하게 가르쳐야 큰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자질이 없는 황이는 아무리 성실하고 굳세며 올바른 사람이어도 평생 선도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것이 현실이고, 이것이 천도(天道)다.”
그 뒤 황이가 만난 천종은 자질을 따지지 않았다.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며 누구에게나 선로를 열어주겠다고 했다. 황이는 또 다른 사기라고 의심했지만, 그곳에서 정말로 축기에 성공했다. 늙은 황이는 눈물을 흘렸고,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이 길을 알려주었다.
천종에서는 함께 공력을 모아 나이 많은 사람부터 돌파시켰다. 먼저 올라간 사람이 다음 사람을 이끌고, 사제와 친우가 서로를 돕는 상호부조 수선이었다. 황이에게는 모두가 함께 비승할 수 있는 길이 보였다. 그가 믿고 따르던 천종의 정식 이름은 천마종이었고, 그곳에서 성장해 천마태자가 된 사람이 바로 황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영신천이 찾아와 이 모든 것을 부수었다. 황이의 눈에 비친 그는 가족과 친우를 무참히 죽이는 괴물이었다.
이어진 전언은 그들이 죽은 시점을 바꾸어 놓았다. 황이의 가족과 친우는 이미 그의 뱃속과 천마번 안에 있었다. 꿈에서 함께 공력을 나누고 수련하던 나날은, 그들을 잡아먹고 혼백을 연화하던 기억이었다.
천마번 속 망혼들은 황이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진작 혼비백산했을 자신들에게 살아남아 수련할 기회를 주었다고 옹호했다. 천마태자도 자신은 정도가 내친 사람들에게 선로를 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영신천은 그가 먹은 사람들이 모두 진심으로 원해서 먹혔느냐고 물었다. 천마태자는 영신천이 구한 범인들도 기회만 생기면 똑같이 사람을 먹으려 할 것이라고 맞받았다.
영신천은 과거에도 모두에게 수선의 길을 열어준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때는 경쟁과 전쟁이 격화되어 세계가 무너질 지경에 이르렀다. 이를 막으려고 수사들의 자질과 수를 제한하는 도통이 만들어졌다. 영근뿐 아니라 영기와 법력도 본래부터 존재한 자연법칙이 아니었다. 장우가 수선의 기본 조건으로 알고 있던 것들이 모두 누군가 만든 도통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이 끝없이 선도를 향하는 것에도 심향선도의 영향이 있었다.
천마태자는 이를 구원의 역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상을 구한다고? 너희는 그저 후대 사람들의 선로(仙路)를 틀어막고, 영원히 높은 곳에 군림하며, 선도의 권력을 독점하고 싶은 것뿐이다.”
영신천은 만인수선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심향선도의 영향을 낮추거나 제거할 방법을 찾은 뒤여야 한다고 했다.
“만인의 수선이라…… 우리의 세계는 아직 그 단계까지 발전하지 못했다. 억지로 강행한다면, 단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지켜보던 복희는 십대 대학을 예로 들었다. 하계의 학생과 전문대생까지 모두 십대에 들어가더라도, 자원이 그대로라면 경쟁만 더 격해진다는 것이다. 참선은 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다른 문제를 짚었다.
“수를 통제하는 건 문제가 없다. 문제는 분배지. 한정된 수 안에서, 누가 십대에 들어가는가? 누가 법조를 세우는가? 또 누가 선제(仙帝)가 되는가?”
장우는 윤회라면 심향선도의 영향을 없앨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미 가능한 일이었을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무료였던 것이 나중에 유료가 되었거나, 누군가에게만 허락되었을 가능성도 떠올렸다.
꿈이 끝난 뒤 황이의 진령은 전쟁이 어떻게 끝났는지 물었다. 그 결과를 전해 듣는 것이 전승을 남기며 영신천과 맺었던 약속이었다. 지금의 곤허에 관한 답을 들은 황이는 자신도, 영신천도, 다른 이들도 결국 패배했다며 탄식한 뒤 사라졌다.[hwang]
군현책
군현책의 꿈에서 기몽운은 도시의 사람들을 먹어 치우면서 자신이 그들을 구했다고 말했다. 마도의 가르침을 받은 촌민들은 마을을 지키던 만법종 제자를 붙잡아 약인으로 삼았다. 군현책이 구하려던 사람들이 도리어 왜 자신들은 수선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군현책은 종문에 도움을 청했다. 사형 영신천은 천마번을 꺼내 보이며, 정도도 시대에 맞춰 변해야 한다고 했다. 마도의 기술을 정도의 뜻으로 쓰는 마도정용, 마도로 마도를 제압하는 이마제마였다. 스승 법연자도, 장문 진기자도 같은 길을 택했다. 군현책이 찾아가는 사람마다 천마번을 꺼냈다.
꿈속에서 법연자는 정마대전을 인구라는 자원을 이용하는 방식의 경쟁으로 설명했다.
“더 효율적인 수익 모델을 차지하고, 분배할 수 있는 이윤을 더 많이 가진 쪽만이 최후의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법이지.”
마지막까지 마도 기술을 거부한 사람은 소사숙이었다. 군현책은 그를 따랐으나 반대파는 차례로 토벌됐고, 끝내 뇌운협에서 동문들의 포위 공격을 받았다.
꿈이 끝나자 영신천이 남긴 기록이 나타났다. 실제의 군현책은 소사숙을 끝까지 따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가 이길 것이라 믿었지만 전황이 기울자 대세에 휩쓸렸고, 소사숙이 너무 고지식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마지막 토벌에 가담한 사람들 중에는 군현책도 있었다.
영신천은 군현책이 보지 못한 장문과 소사숙의 마지막 대화를 전했다. 장문이 내세운 것은 정도의 생존이었다. 지금 마도에 전멸당하면 후대에 정념을 전할 기회도 없어진다는 주장이었다. 소사숙은 그 수단을 받아들이면 끝내 마도로 변할 것이라고 맞섰다.
“마도의 더러운 수단에 기대어 살아남겠다고? 그따위 정도(正道)라면 전해지지 않는 편이 낫다.”
장문은 훗날 치욕을 받더라도 개혁을 감당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했다.
“개혁하면, 종문이 망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바꾸지 않으면… 천하가 반드시 망한다.”
두 사람은 끝내 서로를 설득하지 못했다. 장문은 공격을 명했고, 소사숙은 마를 멸하고 도를 수호하라는 외침과 함께 맞섰다.
군현책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묻자, 영신천은 세상을 다스리려던 이들 모두 실패를 무릅쓰고 자신의 선택을 관철했다고 답했다. 군현책은 다시 물었다.
“허나 그 실패의 대가는 그들뿐만 아니라, 온 천하 만민이 치러야만 합니다.”
영신천도 수많은 회한을 품고 있었다. 그래도 당시로 돌아간다면 마도정용을 지지하겠다고 했다. 장문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지만 시간을 벌었고, 이제는 그때의 선택을 되돌려놓아야 했다. 자신이 해내지 못하면 다음 세대가 이어서 고칠 것이라고 했다.
“정마대전은 결코 끝난 적이 없으며, 또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끝없는 긴 싸움이다.”
현재의 군현책은 남은 진령을 태워 장우 앞에 길을 열었다.[gun]
위령원
구일분장에서는 오래된 시신도 회수하고 가공해 쓰는 자원이었다. 장우 역시 그 시신들을 이용해 왔다. 영계의 연결이 끊기자 회수장에 덮여 있던 옛 간판이 드러났다. 위령원. 시체 처리장으로 쓰이던 곳은 본래 묘지였다.
장우는 시신들을 안장해 영맥으로 남기는 길을 택했다. 고종은 이미 시체를 이용해 온 그가 이제 와서 선량한 척한다고 지적했다. 매장하면 공공의 영맥이 되지만, 시신을 재료로 쓰면 당장 개인의 이익이 된다는 차이도 있었다. 영신천의 전승은 안장을 보상함으로써 그 선택을 도왔다.[cemetery]
여봉
여봉의 진령은 장우에게 자신의 삶을 겪게 하겠다고 했다. 같은 상황에서 같은 선택을 내릴 수 있어야 힘을 넘겨주고, 그렇지 못하면 죽으라는 요구였다. 장우는 어두운 감옥 안에서 자신이 여봉이라고 되뇌는 수감자가 되었다.
마도정용이 채택된 뒤, 감마전은 마도 기술의 남용을 감찰하는 기관으로 세워졌다. 여봉은 전주 운태진과 함께 일했다. 운태진은 외종 제자부터 장문까지 감찰 대상에 들어간다고 약속했다.
전선에서 양민을 혈제한 사숙을 조사하던 여봉은 오히려 쫓겨났다. 사숙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제자들이 모두 죽었을 것이라며, 범인 몇 명 때문에 전선을 망칠 셈이냐고 따졌다. 보고를 받은 운태진은 여봉에게 기다리라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 그날 밤, 그녀는 상처투성이가 된 채 사숙을 잡아 돌아왔다.
운태진은 마도 기술을 남용하는 자도 자신이 치겠다고 했다.
“정 안 되면 내전이라도 한 판 더 벌이지, 뭐.”
여봉도 이 사람과 함께라면 마도정용을 믿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비슷한 사건은 계속 늘었다. 죄인과 포로를 쓰던 기술은 마도 제자에게, 마문이 사육하던 범인에게로 번졌다. 감찰을 막는 사람도 많아졌다. 전선의 수사들은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기에 감마전도 편히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인조 혈육과 인조 혼소가 보급되자 감마전의 일은 크게 줄었다. 사람을 희생하지 않고도 마도 기술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정도의 문파들은 값싼 물자를 사들였고, 전선에서는 승리가 이어졌다.
그러던 중 실종 사건을 조사하던 여봉이 지하 공장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생산 라인에 실려 도살되고 있었다. 그곳에 운태진이 나타났다. 여봉은 사저도 조사하러 온 줄 알고 자신이 본 일을 설명했다. 운태진은 듣는 내내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공장 더 깊은 곳에는 운태진과 똑같은 얼굴을 한 인간들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실험 재료로 삼아 사람을 빠르게 길러내는 기술을 만들었다. 하지만 자신만 길러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다른 사람들까지 희생시켰다. 인조 물자의 정체는 그렇게 양식한 인간의 혈육과 혼백이었다. 이미 수련 자원뿐 아니라 일상의 음식에까지 들어가 있었다.
운태진은 사람들이 출처를 모르기만 하면 여전히 정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비밀을 아는 자신만 업보를 짊어지면 된다는 것이었다. 영원히 숨길 필요도 없었다. 기술이 완성되어 진짜 인조 물자를 만들고 마도를 물리친 뒤에는 공개해도 괜찮았다.
“먼 훗날 모든 것이 정리되고 나서 공개할 때가 오면…… 이 모든 것은 내 개인의 소행일 뿐이고, 오직 나 혼자만이 마도에 빠진 것이 될 테니까.”
꿈속의 운태진은 여봉에게 자신의 본명혼화를 건네고 감시를 부탁했다. 여봉은 침묵했고, 뒤늦게 돌이킬 수 없게 된 세상을 보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고 후회했다.
꿈은 다시 시작됐다. 여봉은 장우에게 그 삶을 거듭 겪게 했다. 그러나 장우의 안에는 참선과 복희, 황우와 고종의 의념도 있었다. 장우가 여봉의 삶에 빠져 있는 동안 그들은 바깥에서 전언을 읽을 수 있었다.
실제의 여봉은 공장을 보고 침묵하지 않았다. 장문에게 모든 일을 보고하고 천하에 공표하겠다고 선언했다. 자신을 막고 싶으면 죽이라고 했다. 운태진은 그의 얼굴에 손을 얹었다.
“잠들렴, 사제.” “새로운 시대가 올 때까지 잠에 들거라. 너 같은 사람도 평온하게 살 수 있는,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오면…… 그때 내가 널 깨워줄게.”
장우는 여봉이 죽음을 통해 벗어나려 했던 마음도 짚었다. 사저에게 타협할 수는 없었지만 적이 되기도 싫었고, 자신의 폭로로 정도의 승세가 무너지는 것도 원치 않았다. 운태진에게 죽여달라고 내민 선택에는 그 두려움이 있었다. 여봉은 다시 깨어나 미래의 곤허를 본 뒤, 끝까지 맞서지 못한 자신을 후회했다. 꿈에서는 그 항의마저 없던 일이 되어 있었다.
여봉은 자신의 나약함이 진실을 은폐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답했다. 종문이 변하고 시대가 자신을 버리는 것을 두려워해 책임을 내팽개쳤다고 했다. 그러고는 다시 장우의 선택을 확인하려 했다.
장우는 꿈을 더 겪는 대신 자신의 답을 의념으로 전했다. 한참 뒤 여봉이 말했다.
“비록 네 선택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 선택을 막을 생각도 없다.”
여봉은 힘을 넘기며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이 길을 선택한 이상, 제2의 운태진이 되지는 마라.”[yu]
영운요
마지막 꿈의 주인은 영신천과 운태진의 딸 영운요였다. 아이의 눈에 아버지는 흉하고 난폭한 사람이었다. 전쟁이 끝났는데도 어머니와 싸웠고, 종문 전체를 감시하겠다는 사업에 매달렸다. 딸의 음식과 외출을 제한하고 몸을 검사하기까지 했다. 그에 비해 어머니는 아름답고 다정했다.
영운요가 어머니에게 다가갔을 때, 운태진의 손가락이 아이의 미간을 짚었다. 영신천이 끼어들어 그 손을 막았다. 어머니는 딸을 죽이려 하고 있었다.
영운요는 운태진이 도통을 세우기 전에 만들어낸 인조인간이었다. 그녀에게 남아 있는 옛 혈맥은 완성된 도통의 허점이 될 수 있었다. 운태진은 그 흔적을 없애려 했다. 영신천이 음식을 제한한 것은 딸이 인육을 먹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고, 외출을 막고 몸을 검사한 것은 운태진의 손에서 지키기 위해서였다. 영운요의 눈앞에서 아버지는 정의로운 기개를 두른 당당한 모습으로, 어머니는 마기를 뿜는 음험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부모의 다툼도 집안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었다. 영신천은 전쟁이 끝난 뒤 마도 기술의 남용을 바로잡으려 했지만, 운태진은 사정을 아는 종문의 윗선들이 자신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영신천이 고집하던 전면 감시도 그 남용을 막으려던 방책이었다. 그를 외면하던 사람들은 운태진의 기술이 가져온 이익을 누리고 있었다.
영신천은 기몽운 등을 추적하면서 그들이 전쟁을 앞당기는 도화선으로 이용되었을 정황도 의심했다. 그러나 운태진은 자신의 선택을 누군가에게 조종당한 결과로 돌리지 않았다.
모든 일을 알게 된 영운요는 아버지를 돕겠다고 말했다. 영신천은 그러려면 만법종의 절반 이상과 적이 될지도 모른다고 답했다. 수많은 이들이 등을 돌리고 종문에서 한 발짝도 떼기 어려워질 수 있었다. 아이의 마음은 움츠러들었다.
이후에도 아버지는 고립과 배척 속에서 자기 일을 계속했다. 영운요는 모두 외면해도 아무도 탓하지 않을 텐데 왜 버티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기왕 내가 할 수 있고, 나 또한 하기를 원하니, 그저 할 뿐이다.”
영신천은 세상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려는 강자의 오만이 자신에게도 있다고 덧붙였다. 실패하면 다음 세대에 맡기면 된다고 했다. 영운요는 다시 한번 돕겠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영신천도 고개를 끄덕였다.
영운요가 자신을 그의 딸이라고 할 수 있는지 묻자, 영신천은 운태진이 아이를 만들 때 자신의 피를 섞지 않았으니 혈맥으로는 부녀가 아니라고 답했다. 아이의 얼굴이 어두워지려는 순간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기꺼이 내 이념을 계승하고자 한다면, 곧 나의 후인(後人)이니. 혈맥의 유무 따위는 중요치 않다.”
그 뒤 영운요는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 꿈이 흩어지고 영신천의 전언이 나타났다. 그는 끝내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 영운요의 서른 번째 생일에 운태진이 그녀를 암살했다.
영신천은 부활시킬 방법을 찾아 사방을 헤맸다. 천마종의 윤회 도인은 진령을 남기는 데 도움을 주었고, 극서에서 만난 황우는 자신의 피와 살로 몸에 일말의 활성을 보존해주었다. 그래도 아이를 온전히 되살리는 데는 실패했다. 짧게나마 진령과 대화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나는 본래 그녀를 편히 보내주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장우 앞의 시신이 천천히 눈을 떴다. 영운요는 꿈이 이어진 동안 자신도 장우의 기억을 조금 보았다고 했다. 아버지의 이념을 계승할 자격이 있다고 인정한 그녀는, 몸 안에 남은 영신천의 혈맥 힘과 운태진의 혈맥 정보를 넘겨주려 했다. 다만 그것을 받으면 운태진의 생사대적이 된다는 점을 먼저 알려주었다.
“각오는 됐어?”
장우가 답했다.
“진작부터 애가 타던 참입니다.”
혈광이 몸으로 들어오고, 선인후예는 6급에 도달했다. 영운요의 진령은 서서히 흩어졌다.
“오늘부터 네가 아버지의 새로운 후계자야.” “남은 일은 네게 맡길게.”[young]
계승이 남긴 힘
기억몽경 이전의 선인후예는 도건곤에게서 복제한 도종으로, 약 10㎥의 공간에 비생물을 수납하는 능력이었다. 장우는 다섯 시신에 감춰진 전승 공간을 융합하면서 이를 키웠다. 영신천은 혈통만으로 전승이 이어지지 않도록 해두었으며, 마지막에는 영운요가 장우의 기억을 보고 자격을 확인했다.
| 급수 | 얻은 시점·대상 | 새로 얻은 주요 기능 |
|---|---|---|
2급 | 801장. 14층 복선천의 유산에서 발견한 능풍 | 의식 수용·보관. 자신의 의식으로 들어가 진령과 교류하고 시신에 남은 정보를 해독할 수 있다. |
3급 | 807장. 구일분장 지하의 황이 | 살아 있는 생명체를 수용한다. 다만 내부의 공기와 영기가 희박해 거주·수련에는 제약이 있다. |
4급 | 812–813장. 장우에게 접근해 온 군현책 | 현실의 지정 지점과 동천을 잇는 다리 4개. 철거·재설치할 수 있으나 곤허의 층을 넘어갈 수는 없다. |
5급 | 818장. 공장 구역의 여봉 | 다리 8개. 타인의 몸에도 다리를 설치할 수 있다. |
6급 | 821–822장. 실험 구역의 거시 시신 안에 숨겨진 영운요 | 미경 전체에 대한 감응·통제. 주변 반경 1km에 동천을 겹치는 동천현화. 다리 18개. |
동천의 가로·세로·높이는 승급 직후를 기준으로 2급 100m, 3급 300m, 4급 400m, 5급 1km 이상, 6급 10km 초과로 커진다. 승급 사이에도 시신 부품에 남은 동천의 힘을 흡수해 넓힐 수 있다.[space]
전승에는 숨기던 공간 능력을 드러낼 명분도 있었다. 미경 전체에 영신천의 전언이 울려 퍼지면서, 장우의 능력을 영신천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으로 알릴 길이 열렸다. 영신천의 옛 인맥도 후원이 될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이 무조건 장우를 보호하는 것은 아니었다. 장우 역시 미경을 복구할 수 있는 전승자로서 이익을 제공하고, 정당한 소유자로 인정받아야 했다.[legacy]
정마대전 종합
다섯 몽경은 전쟁을 시간순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능풍의 뒤에 나온 황이의 어린 시절은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며, 영운요의 꿈은 전후의 갈등을 다룬다.
| 시기 | 주요 사건 |
|---|---|
전쟁 이전 | 선문은 영근에 따라 입문을 제한했다. 천마종은 배제된 사람들에게 수선의 길을 열어주며 세력을 넓혔다. 영근·영기·법력 등의 도통은 이보다 앞선 시대에 이미 성립해 있었다. |
전쟁의 확대 | 기몽운과 천마태자를 베려던 영신천의 싸움이 정마대전으로 번졌다. 후일 영신천은 이들이 전쟁을 앞당기는 도화선으로 이용되었을 정황을 의심했다. |
마도정용 | 열세에 놓인 만법종이 마도 기술을 도입했다. 반대파와 내전이 벌어졌고 소사숙을 비롯한 저항자들이 토벌됐다. |
감마전과 전세 역전 | 마도 기술을 감찰하는 감마전이 설치됐다. 만법종의 인조 물자가 보급되면서 정도가 승기를 잡았으나, 물자는 인간 양식장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
전후 | 영신천은 마도 기술의 남용을 바로잡으려다 고립됐다. 운태진을 도왔던 윗선의 지지가 계속됐고, 영운요도 아버지의 일을 돕다가 암살됐다. |
후세에 남긴 전승 | 영신천은 옛사람들의 진령과 시신에 기억과 힘을 남겼다. 훗날 장우가 이를 겪고 전승을 받았다. |
해설
능풍의 기억
능풍은 죽어서도 한 번쯤 천재 대사형이고 싶었던 사람이다. 영신천의 전언은 그 허세를 폭로하면서도 그를 존경한다는 말을 먼저 남긴다. 재능도 명성도 없었던 사형을 왜 존경했는지는 뒤이어 밝혀지는 고문의 전말에서 알 수 있다. 복희가 웃었던 짧은 매질과 처음에 보았던 시신이 같은 사건이었다. 능풍을 우습게 보게 한 기억의 왜곡이, 바로 다음 순간에는 그가 무엇을 더 무겁게 여겼는지 드러낸다.
기몽운의 100년은 그 곁에서 다르게 흐른다. 능풍에게는 폐관이 길어진 시간이지만, 그녀에게는 기다리는 동안 늙어가는 세월이다. 기몽운이 내세우는 노력과 자질의 불공평은 다음 몽경에서 황이가 평생 겪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그녀가 얻은 새 자질은 능풍에게서 뜯어낸 선근과 도기였다. 자신을 가로막던 재능의 벽을 넘어서는 데 연인의 몸을 썼다는 사실까지 남긴다.
그래서 능풍과 황이를 연달아 보여주는 순서가 중요하다. 먼저 기몽운의 회유를 거절한 사람을 만나고, 다음에는 그를 고문한 마두의 삶을 처음부터 산다. 황이에게 사연이 생겼다고 능풍이 당한 일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동시에 능풍의 기억만 보았을 때는 알 수 없었던, 사람들이 천마종을 찾아가는 이유를 이제 알게 된다.
황이와 만인수선
세 번의 측정과 입시
여섯 살·열두 살·열여덟 살은 중국의 일반적인 6·3·3 학제에서 초등 입학, 중등 진입, 대학 진입의 나이와 겹친다. 이 수치는 영근 판정을 입시와 학벌사회의 비유로 읽게 한다. 바로 다음 장에서 복희가 십대 대학 입학을 예로 들고, 참선이 누가 그 자리를 얻는지 되묻는 것도 같은 연결이다.[school]
황이에게 어린 시절의 판정은 이후 수십 년을 무효로 만든다. 성실함과 배움이 아무리 쌓여도 입문 자격은 생기지 않는다. 반대로 선영근 소년의 폭력과 게으름은 그 자격을 없애지 못한다. 도장은 황이가 어떤 반례를 들어도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선영근이라는 답 하나로 품행과 노력에 관한 모든 질문을 끝낼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죄를 저지를 가능성조차 그를 받아주어야 할 이유가 된다.
그 답을 천도라고 부른 뒤, 다음 장에서는 영근 자체가 만들어진 도통이라고 밝힌다. 선협에서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타고난 자질이 누군가 세운 선발 제도로 바뀐다. 황이가 평생 들어온 말의 권위도 달라진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졌다는 사실과, 그 기준이 본래부터 옳았다는 주장은 더 이상 같은 말일 수 없다.
상호부조와 공동 비승
천종이 내세우는 유교무류는 공자의 교육론으로 알려진 말이다. 자질 없는 사람을 내친 선문 앞에, 마도 종문이 누구나 배울 수 있다는 약속을 들고 나타난다. 황이는 명칭을 알기도 전에 그 약속의 수혜자가 된다. 천마종이라는 이름을 뒤늦게 듣고도 떠나지 않는 이유는 이미 자신과 가족의 삶이 달라졌기 때문이다.[confucius]
친지와 벗을 불러 모으고 공력을 모아 차례로 돌파하는 모습에는 다단계 조직이 겹쳐 보인다. 동시에 상호부조·공동 비승이라는 어휘는 집단화와 공동 번영의 약속을 떠올리게 한다. 중국의 농업 집단화도 호조조에서 협동 생산으로 나아가며 공동부유를 내세웠다. 천종에서는 나이 많은 사람부터 돌파시킨다는 차이가 있지만, 함께 모은 힘으로 먼저 올라선 이가 뒤의 사람들을 이끈다는 약속은 분명하다.[mutual]
식인이 밝혀지면 함께 수련했다는 회고의 의미가 달라진다. 공동체가 함께 올라간 시간은 그 구성원들이 황이의 몸과 천마번으로 들어간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작품은 여기서 황이의 축기를 가짜로 돌리거나, 망혼들의 감사를 모두 거짓말로 처리하지 않는다. 선문에서 얻지 못했던 수명과 수련의 기회는 주어졌다. 그 혜택을 받은 이들이 자신을 먹은 사람을 옹호한다.
그래도 영신천의 질문은 남는다. 먹힌 모든 사람이 원했는가. 천마태자의 대답은 기회만 주어지면 다른 사람들도 먹는 쪽이 되고 싶어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자신을 먹어도 좋다는 동의와 남을 먹고 올라서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천마종을 만든 결핍이 설득력 있게 제시된 뒤에도, 그 결핍만으로 모든 희생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아직 이르지 못한 단계
영신천의 발전 단계론은 만인수선을 금지하면서도 그 이상을 버리지 않는다. 모두에게 길을 열려면, 먼저 그 삶을 감당할 수 있는 세계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를 말하며 생산력과 공동의 부가 풍부해지고 노동과 생활의 조건도 달라져야 한다고 설명한 대목과 나란히 읽을 수 있다.[marx]
복희의 대학 비유대로 정원만 늘리고 자원은 그대로 두면, 합격자가 늘어난 뒤에도 쟁탈은 계속된다. 천마종은 부족한 자원을 사람의 육체와 혼백으로 충당했다. 영신천의 말은 그 물질적 한계를 인정하는 답이다. 게다가 그가 직접 선결 조건으로 든 것은 심향선도의 영향력 감소였다. 생산량을 늘리는 것에 더해, 끝없이 높은 경지를 욕망하게 만드는 조건도 바뀌어야 했다.
같은 말을 정치적으로 읽으면 미래의 해방을 약속하며 현재의 제한을 유지하는 논리가 된다. 레닌은 새로운 생활 조건이 성립하기 전까지 국가와 통제가 남는다고 설명했다. 1987년 중국공산당 13차 대회 보고는 낙후한 생산력을 이유로 사회주의 초급단계를 건너뛸 수 없다고 설명하면서, 인민민주독재와 당의 지도를 유지했다. 영신천의 대사는 그 통치 논리를 옹호하는 현실론으로도, 끝없이 유예되는 약속을 묻는 대사로도 읽힌다.[stages]
후자의 질문을 맡는 사람이 천마태자와 참선, 장우다. 천마태자는 제한을 만든 선인들이 경쟁을 두려워하며 권력을 독점한다고 비난한다. 참선은 수를 제한할 필요와 그 자리를 누가 차지하는가를 구분한다. 장우는 윤회라면 이미 조건을 바꿀 수 있지 않았을까 의심한다. 처음 제한을 만들 때 이유가 있었다고 해서, 그 제한을 유지하는 지금의 권력까지 자동으로 정당해지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정과 마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한 번씩 배정하는 대응표로는 논쟁을 따라가기 어렵다. 천마종의 만인수선에서 보편적 해방의 이상을 읽다가, 이를 제지하는 영신천에게서 사회주의의 발전 단계론을 듣게 된다. 천마태자가 선인들의 독점을 비판하고 모든 사람의 경쟁을 요구할 때는 시장 개방의 언어도 들린다. 수선의 기회를 넓히는 일, 경쟁을 제한하는 일, 자원을 배분하는 일마다 같은 두 인물의 말이 서로 다른 정치적 의미를 얻는다.
마도정용과 개혁의 언어
마도정용과 이마제마는 적의 기술을 받아들이되 그 쓰임을 자기 이념 아래 두겠다는 조어다. 선협의 문맥에서는 사람을 해치던 술법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느냐는 정마 논쟁이고, 현실의 문맥에서는 시장과 자본의 수단을 사회주의의 통제 아래 도입한다는 개혁 논리를 떠올리게 한다. 군현책의 꿈에 나오는 인구 자원과 수익의 언어는 그 비교를 한층 노골적으로 만든다.
전언 속 장문의 언어는 다르다. 이윤보다 생존과 책임을 말하며, 지금 살아남아야 후대에 정념도 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덩샤오핑의 남방담화에서도 개혁개방과 생활 개선을 하지 않으면 다른 길이 막힌다는 논리가 등장한다. 작중의 개혁 역시 더 나은 제도를 여유 있게 고르는 일이 아니라, 바꾸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선택으로 제시된다.[reform]
꿈과 전언의 차이는 두 방향으로 읽힌다. 군현책이 자신의 가담을 견디지 못해 스승과 장문에게 추악한 속내를 떠넘겼다고 보면, 전언은 그들이 감당했던 사정을 돌려주는 기록이다. 반면 꿈속의 자원·이윤 논리와 후대의 곤허를 함께 보면, 생존과 정념이라는 말이 끝내 무엇을 정당화했는지 묻게 된다. 꿈의 발언이 과장되었다고 해도 동문 토벌은 사라지지 않고, 장문의 선의가 입증된다고 해도 개혁의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영신천은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면서도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지지하겠다고 한다. 그가 뒤늦게 반대편의 말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과거에 다른 길이 가능했다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군현책의 우유부단함을 드러냈다고 해서, 실패의 대가를 만민이 치른다는 질문까지 무효가 되지는 않는다.
참선이 이 대화 뒤에 꺼내는 《도덕경》의 말도 그래서 한쪽 답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나라의 오욕과 재앙을 짊어질 수 있어야 통치할 자격이 있다는 말은 장문과 영신천의 결단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군현책은 바로 앞에서 그들이 짊어진다는 책임 중 얼마나 많은 몫이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는지를 물었다. 통치자가 치욕을 감수하는 일과 백성이 피해를 입는 일은 이 장에서 계속 부딪친다.[lao]
과격한 발언은 패배자의 입에
선인들이 선로를 독점한 진짜 마도라는 비난은 사람을 잡아먹는 천마태자의 입에서 나온다. 마도가 되어 살아남을 바에는 정도가 전해지지 않는 편이 낫다는 말은 토벌당할 소사숙이 한다. 장문에게는 생존을 위한 반론과 작중의 승리가 주어진다. 작품은 가장 강경한 비판을 들려주면서, 그 말을 한 인물들을 패배시킨다.
이 배치는 정파의 생존을 위한 비극적 타협이라는 독해를 허용한다. 이상만 고집한 반대파를 넘어 개혁을 택했고, 그 덕분에 후대가 남았다는 이야기다. 다른 쪽에서는 노선투쟁과 숙청의 비판으로 읽힌다. 사람을 해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키던 동문들이, 그 원칙을 후세에 전한다는 명분 아래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만법종은 살아남았지만, 장우가 사는 곤허에서는 소사숙의 경고도 실현되어 있다.
과격한 발언을 패배자에게 맡기는 것은 검열을 피할 여지를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강경한 비판을 작가의 직접 선언으로 쓰지 않고, 마두의 항변과 죽은 반대파의 주장으로 제시한다. 노골적인 이윤 논리는 왜곡된 기억에 담고, 이를 교정하는 기록에는 생존의 명분을 남긴다. 정파와 개혁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이야기로 읽을 근거가 있으면서, 그 정당화에 반대하는 말도 지워지지 않는다.
여기에는 장문의 말 자체를 뒤집는 구성이 하나 더 있다. 그는 후세는 패자의 말을 듣지 않는다며 승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편에서 후세의 장우와 독자가 듣는 것은 바로 그 패자들의 말이다. 소사숙은 죽었지만 그의 최후 논쟁은 군현책의 꿈을 교정하는 전언에도 남아 있다. 승리한 개혁을 비판한 사람이 서사 안에서는 제압되고, 그 경고는 후대에 도착한다. 패배시키는 방식과 귀 기울이게 하는 방식이 같은 에피소드 안에 놓여 있다.
운태진과 감마전
감마전은 한때 실제로 마도 기술의 남용을 처벌했다. 운태진이 전선의 사숙까지 잡아왔기에 여봉도 그 권한을 믿을 수 있었다. 인조 물자의 등장은 감찰이 필요 없어진 것처럼 보이게 한다. 사람을 희생하지 않고도 자원을 만들 수 있다면 남용 사건이 줄어드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죽는 사람은 감찰받지 않는 곳에서 길러지고 있었다. 혜택은 만법종을 넘어 물자를 사들인 여러 문파에 퍼졌다.
운태진은 여기서 정도를 유지할 새로운 조건을 제시한다. 사람들이 모르면 된다. 무엇을 먹고 쓰는지가 같아도 출처를 아는 순간 마도가 되고, 모르는 동안은 정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감마전이 적발해야 할 남용을 숨기는 일이 이제 정도의 이름을 보존하는 일이 된다. 이 대목을 정보 통제와 검열의 비판으로 읽으면, 은폐는 범죄를 가리는 부수적인 수단을 넘어 집단의 결백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언젠가 모두 밝히고 자신만 죄를 지겠다는 말은 희생을 자처하는 영웅의 언어도 갖추고 있다. 운태진은 실제로 자기 몸을 실험에 썼고, 자신의 복제체를 도살한다. 그러나 훗날 이 일을 개인의 소행으로 정리하겠다는 계획까지 그 자리에서 세운다. 다음 몽경에서는 사정을 아는 윗선들이 자신을 지지한다고 밝힌다. 한 악인이 벌인 비밀이라는 장르적 설명 안에, 공동으로 이익을 얻은 일을 한 사람의 타락으로 처리하는 방법도 들어 있는 셈이다.
여봉의 꿈에서 본명혼화를 건네는 장면은 사저가 자신의 목숨까지 맡기는 약속으로 보인다. 감시할 권한도 수단도 감시받을 사람이 준다. 전언에서 드러난 실제 항의의 결말은 그 관계를 더 분명히 보여준다. 운태진은 자신을 고발하려는 여봉에게 언제 말할 수 있는지도 정해준다. 그가 평온하게 살 시대가 오면 깨워주겠다는 말로, 지금의 발언을 무기한 미룬다. 애정 어린 어조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 작품의 식인은 루쉰의 《광인일기》와 나란히 읽을 때 가족 장면까지 달라 보인다. 그 작품에서는 인의도덕을 말하는 역사에서 식인을 발견하고, 가까운 가족도 자신을 먹을지 모른다고 의심한다. 자신도 모르게 가족의 살을 먹었을 가능성까지 떠올린다. 기억몽경에서도 도덕의 이름, 함께 살던 친우, 사저의 보호, 집에서 먹는 약식이 차례로 식인과 연결된다. 전장의 마공으로 시작한 공포가 가장 안심하고 의지할 관계와 식탁 안으로 들어온다.[luxun]
영운요와 전승
영운요의 꿈은 앞선 네 편과 독자가 가진 정보부터 다르다. 아이는 다정한 어머니를 믿지만, 독자는 이미 운태진의 공장과 여봉의 봉인을 보았다. 딸이 어머니의 손길을 보호로 받아들이는 동안, 그 손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아버지의 음식 제한과 신체 검사는 반전 뒤에도 실제로 있었던 행동이다. 바뀌는 것은 그 이유다. 딸을 괴롭힌다고 여겼던 행동이 딸을 살려두려던 노력으로 읽힌다. 영신천의 얼굴까지 달라 보이는 꿈은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는지 보여주지만, 그의 전면 감시 구상까지 편안한 해법으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남용을 막겠다며 종문 전체를 자신의 감시 아래 두려 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영신천 자신도 세상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는 강자의 오만에서 예외가 아니라고 말한다.
영신천은 딸에게 일을 맡기기 전에 만법종의 절반 이상을 적으로 돌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운요 역시 장우에게 힘을 넘기기 전에 운태진의 적이 된다는 점을 알린다. 아버지의 경고에 한 번 움츠러들었던 아이가, 이제 다음 계승자에게도 선택할 기회를 준다.
여봉 역시 처음에는 장우가 자기와 같은 선택을 하기를 요구했다. 다른 의념들이 곁에서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면, 장우는 반복되는 삶에서 자신을 잃을 수도 있었다. 마지막에는 여봉이 동의하지 않는 답도 막지 않는다. 전승을 받는 사람이 선배의 삶을 이해하는 것과 그 선배를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은 이 시험에서 갈라진다.
영신천이 보내주려 했다는 전언이 끊기는 자리에서 영운요가 직접 눈을 뜬다. 죽은 딸에 관한 아버지의 회고를 듣다가, 그 딸에게서 이번에는 장우의 이야기를 듣는다. 앞의 삶들을 지켜보던 장우도 누군가에게 읽히고 있었다.
황이는 지금의 곤허를 듣고 모두 패배했다고 했다. 계승을 마친 장우는 영신천을 패배자라고 부르는 말에 이렇게 답한다.
“그는 필패의 싸움에서 지금까지 버텨내며, 희망을 후대에게 계승한 승자란 말이다.”[after]
주석
- 800–802장. 첫 시신은 구일분장 부임 전 14층에서 발견한다. 능풍의 꿈과 영신천의 전언은 801장, 진령과의 마지막 대화는 802장에 나온다. ↩
- 806–807장. ↩
- 811–813장. ↩
- 813–815장. 위령원의 발견과 안장·시체 이용에 관한 논쟁은 815장. ↩
- 817–818장. 장우가 의념으로 전한 마지막 답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는다. ↩
- 821장. ↩
- 1급은 653장, 이후 승급과 기능은 801–802·807·812–813·818·821–822장. 818장은 5급 공간의 각 변이 1km를 넘었다고 쓰지만, 820장에는 다시 500m대에서 커지는 수치가 나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여기서는 승급 직후 명시된 크기를 따른다. 동천 자체의 크기와 동천현화의 반경은 서로 다른 수치다. ↩
- 818장의 공개 계승 구상과 전언, 823–825장의 선맥·미경 소유권 논의. ↩
- 중국 교육부의 6·3·3 학제 설명, 학령별 통계. ↩
- 《논어》 위령공편의 유교무류(有教無類). ↩
- 1953년 농업생산합작사 발전에 관한 결의의 정부 공보 전재. 호조조·협동 생산·공동부유의 결합을 확인할 수 있다. ↩
- 마르크스, 《고타강령비판》 I,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에 관한 대목. ↩
- 레닌, 《국가와 혁명》 5장; 1987년 중국공산당 13차 대회 보고 II절. 1986년 소련공산당 강령에서도 물질적·사회적 조건을 무시한 성급한 공산주의 원칙 도입을 경계하고 기술 발전과 당의 지도적 역할을 함께 제시한다. ↩
- 덩샤오핑 남방담화의 발언 영상·전사. ↩
- 812장에서 참선이 《도덕경》 78장의 말을 직접 인용한다. 해당 원문은 《노자익》 수록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 루쉰, 《광인일기》 본문. 두 작품의 식인과 가족·음식 장면을 비교한 해석이다. ↩
- 822장. 이어 823장에서 장우는 곤허를 바꾸고 싶다고 밝힌다. ↩